사이(間)에서 엿보기/길 위의 지나 간 이야기

[스크랩] (500번째 편지) 영화 `러브레터` 를 닮은 곳-화랑대역

레이지 데이지 2010. 12. 2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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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의 여행편지 #500)

 

서울서 가장 '러브레터' 를 닮은 곳-화랑대역

  

 

 

500번째 여행편지

 

우리 국토의 이야기를  모놀식구들에게 편지를 보낸 지 어언 9년하고 7개월이 지났습니다. '500통 쯤 편지를 보내면 우리나라의 속살까지 전부 소개하겠지' 라는 애초의 목표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랍니다. 10년은커녕 평생 해야할 제 소임인 것 같습니다

 

글을 끄적거리고 싶을 때는 하루에도 두 세편씩 보낸 적도 있었지만 자신 없을 때는 입맛 없는 사람처럼 스무날이고 한달이고 자판을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통, 두 통 쌓인 편지가 모여 500통의 금자탑을 올렸습니다.

 

2005년 4월 300번째 여행편지, 2007년 2월은 400번째 그리고 3년만에 100통을 덯 500번째를 보냈으니 연륜만 본다면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1만 6천명의 독자들이 있기에  제 국토 순례의 길은 외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목표는 1천 개로 삼을까요. 그럼 또 다른 10년이 필요한데 그 때쯤이럼 제 나아가 56세가 된답니다. 아이고 끔찍~ 아무래도 모놀과 함께 여행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래도 이런 글들을 다시 편집해서 여행책 2권울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니?56"는 5쇄나 찍을 정도로 독자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저는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이 길을 걷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답니다. 혹시나 지치고 힘들어도 격려해주시고 마음으로나마 성원주셔요.

그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제 여행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모놀대장 이종원 올림

 

 

 

500번째 편지는  정말 근사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오늘 다녀온 곳은 순전히 500번째 편지를 위한 곳이며 제 아들과 아내가 함께 둘러본 곳입니다.

  

경춘선이 새로 놓이는 바람에 주변은 온통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춘천과 닭갈비만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장은 허를 찔러 보는 여행지를 선택했습니다.  태릉에서 퇴계원까지. 얼마전까지 털컹거렸던 무궁화호가 다녔던 길입니다.  아무도 없는 철로길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얼마나 예쁘게 변하는줄 아십니까.  

 

'오겡끼 데스까'

일본 북해도의 간이역에서 레브레터의 여주인공이 강렬하게 외쳤던 명장면을 내가 직접 해볼 수가 있어요.

 

자 그럼 눈 덮힌 화랑대역으로 안내합니다.

 

 

 

2010년 12월 20일 오전 10시 03분 청량리발 남춘천행 1837호 무궁화열차가 화랑대역에 들어섰다.  잠시 정차하는 동안 기관차에서 기관사가 내려 권재희 화랑대 역장에게 꽃다발을 걸어 주었다. 경춘선 마지막 열차였다.

 

열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화랑대역을 빠져나간다. 역장은 열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렇게 경춘선 무궁화는 71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역무원이 없는 역사는 차가운 북서풍을 맞으며 청승맞게 서 있다.

 

 

화랑대역은 단순한 간이역이 아니라 문화재로 등록된 문화재다. 다른 역은 양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이지만 화랑대역은 비대칭형 삼각형의 박공지붕구조를 가진 특이한 건물이다.

1939년 역사 건립당시는 태릉역이었으나 인근 육사가 바로 옆에 들어서면서 1958년부터는 화랑대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근사한 제복의 육사생도가 007가방을 들고 기차에 오르면 모든 시선을 사로 잡았던 때도 있었다.

 

잿빛처럼 암울한 80년대 경춘선기차야말로 자유를 향한 해방구다. 기차는 대성리, 남이섬, 강촌, 춘천까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젊음의 열정을 한웅쿰씩 떨어뜨려주는 것만 같았다.

 

뭐 그리 고민이 많았는지 몸과 마음이 지치면 북한강변을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다. 말없이 흘러가는 북한강을 하루종일 바라보고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란 노래를 음미하며 보헤미안이 되기도 했다. 쓰디쓴 경월소주 한 잔에 마지막 남은 새우깡 하나를 뚝 분질러 친구와 나눠먹었던 우정도 내겐 간직하고픈 추억이다. 그 아름답던 순간들은 무궁화 열차처럼 이련한 추억거리가 되어 버렸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젠 중년의 세월에 접어들었나보다. 그래도 아이돌 그룹인 티하라가 좋은데도 말이다.

 

 

당시만 해도 낭만이 가득했다.  주말이면 청량리역 시계탑아래는 서울의 대학생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소주, 콜라, 새우깡, 양파링이 가득 들은 박스를 머리에 이고 기차에 싣는 진풍경도 사라진지 오래다.

 

덜컹거리는 비둘기호 연결칸 바닥에 주저 앉아 통기타를 튕기며 고래사냥을 목청것 불러제켰던 호기는 이젠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  도저히 앞 뒤가 맞지 않는 개똥철학으로 여대생을 유혹했던 객기도 세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경춘선에서 하나 건진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아내~

 

 

2시간의 추억열차는 이젠 1시간 쾌속 전철로 바뀌었다.  

'춘천이 가까와질수록 만들어야 할 추억거리는 작아지겠지~'

 

 

 

클락션 표지판. 페인트가 떨어질 정도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본다.

 

육사 후문 입구의 공원

 

 

방금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 나뭇잎 하나가 쓸쓸한 철로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육사 후문 부터 기가 막힌 설경이 펼쳐진다.  폭 30cm되는 철조망을 조심스럽게 건너야 하는데 미끄러지면 아래로 떨어진다. 예전에는 감히 시도해볼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요르단강을 건너면 바로 천국이 펼쳐진다.

 

 

 

서울에 이렇게 예쁜 기차길이 있다니~믿어지지 않아.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비밀 정원이 바로 여기다.

 

새가 한마리 날아오더니 그림이 되어 버렸다.

 

 

이런 길 걸어보고 싶지 않나요  

 

 

왼쪽에 개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육군사관학교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나무가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눈은 고스란히 그곳에 앉아 버렸다.

 

 

둘 다 대학생인 줄 알았다. 인근에 서울여대가 있으니 산책나온 학생인줄 알았는데  앞에 서 있는 여인이 엄마란다.

 

경치가 좋으니까 사람도 회춘하나 보다.

 

 

71년동안 단 하루도 기차가 멈추지 않았던 경춘선 철로를 느끼며 걷고 걸었다.

 

 

눈이 오면 바로 이곳을 찾으라. 그럼 이 모녀처럼 영화속 주인공이 될 것이다.

 

 

카메라만 들이대도 엽서사진

 

 

 

 

 

 

 이때 성수와 아내가 등장

 

벌렁 눕고 싶은 곳~

 

 

 

 

 

제법 포스가 느껴지는데

 

 

 

대장도 등장~

 

러브레터에 이어 러브스토리까지

 

 영화속 장면이 따로 없네

 

 

 

 나 잡아 봐라

 

 

 

 

 

 

 

둘 다 모델이어요. 드레스 코드도 맞네

 

 

침대인줄 알았어

 

미소 한번 뿌려주고

 

 

아이스크림 사 줄 돈이 없어서 ~설탕 뿌려 먹어라.

 

 

 

 

 

 

 육사 골프장 입구. 벚꽃 터널이 그만이다.

 

 

대로로 나오면 태릉이 나온다.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의 능이다.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다가 34세, 왕비가 된지 18년만에 드디어 자신의 인생이 뒤바뀐 아들을 낳게 된다. 거기다 정비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8개월만에 승하하자 친아들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어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된다.

 

인종와 명종의 외척들로 나뉘어진 당파싸움으로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권력의 부패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임꺽정같은 의적들이 출현하게 된다. 개혁자이자 요승 상반된 평을 받고 있는  보우를 등용하기도 했다.

당대 권력자답게 능역의 규모가 크고 석물의 크기도 크다.

 

 

눈이 오면 송림과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낸다. 화장실도 예뻐 보인다.

 

 

 

 

 

 

태릉이 더욱 유익한 것은 조선왕릉 전시관이 있기 때문이다.

왕릉의 형식, 의미, 국장의 절차 등 세계문화유산인 왕릉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국장 행렬

 

 능침의 내부 단면도

 

 

마지막 사진을 내 아들과 함께

 

 

 

 

여행팁

 

걷기는 6호선 화랑대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경춘선 폐선로에 들어서는데 아직 걸어보지는 못했다.

 

5번출구에서 나와 근린공원을 지나 화랑대 사거리를 지나면 군인들이 많이 사는 효성아파트를 지난다. 거기서 육사 삼거리부터 본격적으로 경춘선 폐선에 접어든다. 이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화랑대역이 나온다.

 

 

역사에서 역무원이 되어 보고 단선 철로 변환기도 볼 수 있다. 철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육사후문이 나온다. 내친김에 들어가서 육사박물관과 교정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박물관에는 신기전을 볼 수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리무진 등 보물급 문화재도 있다.  구내식당에 들러 엄청나게 큰 돈가스를 먹는 것도 좋다. 군인들을 상대하다보니 맛보다는 양을 중요시 여긴다.

 

조그만 철교를 건너면서부터 설경이 볼 만한데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태릉 골프장 좌회전하면 문정왕후 능이 태릉이 나온다. 설경이 볼만하며 특히 전국 유일의 왕릉박물관이 있어 답사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 차를 가져왔다면 태릉앞에 주차하는 것이 좋은데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 202, 1155, 1156, 1225, 73번 버스를 타면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예쁜 길을 따라 화랑대역까지 걸어도 운치있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경춘선 회랑대 역(1km 15분)

경춘선 회랑대 역-갈매역 (3.5 km 1시간)

 

화랑대역에서 갈매역까지 걸어도 좋다. 신경춘선 역인 갈매역에서 상봉역까지 경춘선 전철을 이용하면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출처 : 모놀과 정수
글쓴이 : 이종원 원글보기
메모 : 보물은 항상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