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 靜 ...우두커니, 멀거니/낯설게 하기

武士를 생각하며-마음속의 칼.

레이지 데이지 2011. 8. 11. 03:30

정신적으로 불안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변덕이 있고....

그래서 어쨌다고...

게다가 술을 마시면 제어도 안된다. 에고...

인생 편집,
생활 편집,
공간 편집,
감성 편집,
.................관계 편집,
재물 편집
시간 편집.
남거든 타인에게 양도.

왜 내 마음은 항상 복잡한가. 왜 내 책상 내 방은 뭔가로 가득 쌓여 있는가. 비워내지 못하니 쌓인다. 쌓이면 지저분하고 분별이 안 된다. 덜어내지 못하고 갈무리 안 된 내 심사는 불안해지고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내 책상 위 어지러운 모습이 내 마음 속 풍경을 닮았다. 온갖 잡동사니 책들로 켜켜이 쌓인 책장이 여유와 여백 없는 내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 당장은 쓸 데가 없다. 하지만 버리긴 아깝다. 바로 이 지점이 마음의 갈등 출발점이다.

마치 결혼 때 혼수품목으로 마련한 초호화 그릇세트가 세월의 더께만 낀 채 부엌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듯...

찻잔, 접시, 냄비는 해마다 많아진다. 냉장고 냉동실은 온갖 비닐봉지로 싼 음식물로 가득하다.

장롱과 옷장 안에는 몇 년이 지난 옷들, 심지어 몇 십 년이나 지난 옷들로 채워진다.
한번 구입한 책은 버리지 못한다. 언젠간 다시 꺼내볼 것 같아 쌓아두니 십 년째 먼지만 쌓이고 있다.

컴퓨터 속 문서 이미지 파일에 넣어둔 수많은 자료들은 이젠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당장 오늘 과제에 허겁지겁 매달리다보니 어제 보관된 추억들은 살아나지 못하고 더욱 깊은 과거 속으로 침잠해버린다.

버릴 때가 됐다.

보관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능수능란한 실천이란 당장 소용이 없는데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을 때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내 마음이 복잡해졌다면 바로 내 심리적 용량이 한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내부 수용량이 적정 기준을 넘어 넘실거릴 때 혼란해지고 심란해진다. 바로 이때가 비워야 할 시점이다.

비우지 않으면 용량초과로 마음이 순환이 되지 않고 심리적 혈관들이 막히기 시작한다.

정서적 동맥경화에 자아분열까지 닥칠 수 있다.

편집력은 넘치기 전에 덜어내고 보관 전에 선별하여 잘라내는 선구안이다.

소유할 것이 많아지고 알아두어야 할 관계가 넘쳐날 때 재배치와 재배열을 통한 편집행위가 필요하다.

뒤죽박죽 내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지름길은 바로 비움이다.

내 방 내 집을 늘리는 길은 더 큰 뒤죽박죽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수납의 한계를 정하고 버릴 것을 선별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1. 수납공간을 더 이상 늘리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의식주 범위는 의외로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최소한의 범주에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간소화가 그 첫째이다. 보관능력이 커지면 낭비공간도 늘어난다. 수만 권의 장서능력이 더 이상 미덕인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대문호의 서가를 가질 필요가 없다. 수십 권 들어가는 작은 책장 하나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좋은 책은 좋은 벗과 공유해야 그 가치가 아름답게 빛난다.

사유를 줄이고 공유를 늘리는 것이 간소화의 묘책이다. 지난달 호주 시드니대 중앙도서관에서는 소장 도서의 절반에 달하는 50만 권의 종이책과 논문들을 버린다고 했다. 전자책과 전자논문이 그 대신 자리를 매울 것이다. 디지털은 공유의 훌륭한 수단이다.

2. 버려야 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쓰이지 않고 어둠 속에 내버려져 있다면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옳다. 일단 내 손에서 멀어진 물건은 떠나보내도 좋다. 행동반경 동선에서 멀어진 대상은 내 것이라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묵은 물건을 창고와 벽장 속에 가둘 것인가. 알뜰살뜰 모아두었던 살림살이는 짐일 뿐이다. 맞지 않은 옷은 재활용박스에 버려라.

다 자란 청년의 어린 시절 잡동사니 장난감도 이젠 치워라. 저 깊숙한 수납공간에 저 혼자 버려진 소품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두라. 그 마저 넘친다면 기억 속에 지워진 추억의 흔적은 'Delete'키를 눌러도 된다.

3. 본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편집력의 기본이다.

물건은 제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가 소품 받침대가 되선 안 된다. 책상이 서류보관대가 되는 순간 좁아진 책상은 지식의 산실로 불가능해진다. 휴지통 또한 비워져있어야지 꽉 채워진 휴지통은 기능 상실이다. 물건의 용도가 혼란스러운 현장은 주인의 게으름만 드러낼 뿐이다. 집은 휴식공간이지 창고가 아니다.

생활은 과거에 사로잡힌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진행형이다. 버려진 것은 털어내고 쌓여진 것은 치워야 한다. 적기에 가감해야 삶의 정체현상이 방지된다. 내 몸도 내 마음도 과도한 영양과 지방을 담고 있지 않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도록 비워져 있어야 한다. 여백이 없는 인생, 편집이 필요하다.

 

 

이순신은 편집력의 화신, 위대한 편집자

이순신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서서 세종로 사거리를 건너는 시민들을 내려다본다. 마찬가지로 고민 많은 중년남자도 출근길 이순신 동상을 올려다본다. 오늘 따라 굳은 표정 화석화된 충무공이 아니라 한 남자로 다가온다. 그는 버겁고 힘들어하며 때론 굵은 눈물 뿌리는 조선 남자였다.

선병질에 걸린 듯한 선조임금의 끝없는 의심에 힘겨워했다. 당쟁과 문약에 빠진 조정이 남쪽 바다로 보내는 얄팍한 술수를 그는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가슴속 칼날이 쉴 새 없이 징징 울어댄다. 몸에 와 닿는 시대의 채찍질에 온 몸의 상처가 벌겋게 달아오른 초로의 남자. 푸르스름한 그의 눈빛이 허무하게 서늘하다. 그의 조국은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

 

1905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 해군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함대는 조선 해군을 이끈 이순신에게 진혼제를 올린다. 강국 러시아 발틱 함대와 싸우기 전 섬나라 소국은 불안하기만 했다. 평소 도고는 이순신 장군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 전쟁의 신(神)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고 일본은 신흥제국주의로 치닫는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킨 막강 일본 해군이 피식민지의 옛 장수를 승리의 수호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순신(1545~1598)은 위대한 편집자다. 선택은 가장 뜨거운 삶의 편집행위다. 그는 문신(文臣)이 아니었다. 그는 무(武)의 세계를 택했다. 조선은 문(文)의 제국이었다. 사대부만이 사람대접을 받았던 유교의 나라 조선. 건국 200년이 지나자 조선 당파들은 제 가문의 생존을 위한 이전투구로 일관했다. 백성의 암울한 생계는 치지도외였다. 이때 순신은 문이 아니라 무(武)를 향했다.

그의 첫째 편집정신, 순신은 그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외부를 원망하지 않고 내부의 원칙만을 지켜나갔다. 그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문신의 붓을 접고 대신 검(劍)을 잡았다. 활을 쏘고 말을 달렸다. 무과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 늦은 나이에 겨우 급제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의 먼 변방을 훑었다. 14년 동안, 국경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인생의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강등과 복직의 나날을 보냈다. 1591년 남해 바다가 심상치 않았다. 임진왜란(1592~1598)을 1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마흔 일곱 순신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여수 수군 사령관이 된다.

조선 최대의 국난 임진왜란 7년 동안 국토와 백성은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보름 만에 서울을 함락시킨다. 선조는 의주로 줄행랑친다. 개전 두 달 만에 조선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몰린다. 이제 유일한 조선의 희망은 이순신의 남녘 수군뿐이었다.

그의 둘째 편집정신, 순신은 오직 승리로서 전투를 표현했다. 군인은 이겨야 존재한다. 실전 상황을 장악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싸움을 주도했다. 장졸들은 그를 따랐다. 밖으로 국격의 기세는 떨치지 못하고 안으로 곪아만 가는 나라의 지병을 안타까워한 조선 왕조의 진정한 신민(臣民)은 자주 모함을 받았다. 시련은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패배를 허용치 않았던 주도면밀 군인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1597년 정유년은 충무공 서거 1년 전. 임진란 발발 6년째, 공의 나이 쉰셋. 남해바다는 웃음을 잃었고 빈곤한 언어마저 굳어져 있었다.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사는 2월에 서울로 압송되고 4월에 백의종군한다. 남행길에 모친상을 당하고 7월 원균의 삼도수군은 왜군에 전멸 당한다. 7월말 공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받고 남은 12척으로 함대를 꾸린다.

9월 공은 전선 12척으로 명량바다에서 서해로 우회하려는 적을 쳐부순다. 왜군 330척 함대는 선두 33척을 파괴당하고 퇴각한다. 10월 장군은 목포 앞 고하섬으로 수군진영을 옮기고 최후의 일전을 대비하는 겨울나기에 돌입한다. 그의 인생에 패전의 기록은 전무했다.

그의 셋째 편집정신, 자신의 소멸로써 시대의 종결자가 된다. 적은 사각사각 엄습하고 주군은 보채고 조정은 의심하고 세월은 차갑고 무력은 빈한하고 백성은 울며 자맥질할 때 그는 밤새워 뒤채이며 전전반측한다. 결국 충무공은 조선 중기 나라와 왕조가 침몰할 위기를 수습해놓고 자신의 소멸로써 ‘정치적 완결행위’를 마무리 짓는다.

살아남은 자신이 남해바다 대승리로 말미암아 (미구에 닥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을 예견한 듯하다. 장군은 애당초 그 싹을 잘라 버리는 대결단을 죽음으로써 결행한다. 기나긴 최후의 전투 노량대첩. 사신(死神)이 오가는 거친 길목에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킨다. 적선 2백여 척이 격침되고 50여 척이 도주했다.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성웅의 대업은 이렇게 완결된다.

"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칼의 노래,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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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또 다른 편집력 - 작가 김훈 문체의 3가지 매력

‘지(知)의 편집공학’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는 편집을 “대상의 정보 구조를 해독하고 그것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을 기반으로 편집력을 재정의 해본다면 “산재한 팩트와 스토리를 취사선택 가공하여 완결된 콘텐츠로 종합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 작가는 원천 이야기를 생산하는 스토리텔러다. 독특한 표현과 전개방식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언어의 마술사다. 작가는 자신의 텍스트를 편집해줄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기 전 이미 최초 편집자로서 편집력을 발휘한다. 즉 자신의 스토리를 가장 감동적으로 전달할 문체를 찾는 것이다. A작가와 B작가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문체이다. 문체는 스타일(Style)이다. 스타일은 시대 사상 문화에 따라 일률적이지 않고 독특한 것을 말한다. 정형화된 기존 양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거나 대세를 이룬 트렌드를 가리킨다.

2000년 들어 한국 문단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는 단연 김훈이다. 김씨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은 대체로 나를 비난할 때 쓰인다”면서도 “나는 그 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훈에게 문장 스타일은 겉멋이 아니다. 그의 내용이자 형식이다. 그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앵글이다. 작가는 자신의 3대 역사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통해 전쟁과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 앞에 선 인간의 허무를 남성적 문체로 찬찬하게 그려냈다.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드러내는 형식인 스타일은 분리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제에 맞는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스타일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김훈다움’은 기존의 이야기를 자기식대로 재해석, 재창조하는 데 있다. 김훈을 거치면 이순신이나 남한산성 이야기는 새롭게 탄생된다. <칼의 노래>를 통해 박제화된 ‘성웅 이순신’은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으로 변신한다. 죽음을 앞둔 인간 이순신의 내적 번민을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문체에 담아냈는데 한국 독서계의 변방에 물러나있던 중장년 남성들이 가장 환호했다. 2007년 100만부를 돌파했다. 역사소설을 통해 본 작가 김훈의 문체 매력을 편집력의 관점에서 세 가지로 추려본다.

첫째 주어와 동사로 승부하라. 수사적 군더더기를 빼라. 김훈은 작가로서 문장력을 다지기 위해 법전으로 공부했다 한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문체, 명석 명료한 문장 구사를 위해 법전을 많이 읽었다”고 밝힌다. “기본적으로 글이란 전술과 전략을 갖고 쓰는 것이다. 아주 치밀하게 접근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내 작품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이다. 폐허가 된 남해안을 이것보다 절묘하게 묘사한 문장이 있을지 모르겠다. 수백 번을 고민한 뒤에 쓴 구절이다.” 작가는 형용사와 부사를 부리지 않고 주어와 동사로만 밀고나가는 문체를 구사했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직감적 묘사가 앞서고 시공을 꿰뚫는 유장한 시선이 독백처럼 뒤따라온다. 인간의 개별성과 구체성이 뒤채이는 동사(動詞)에 실려 여울진다. 그의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의 길 위엔 선 ‘수많은 나’를 만날 수가 있다. 감정이입이 잘돼 자기 동일시되는 흡입력이 발생한다.

둘째 최적의 문체 장단을 찾아라. 주제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자기만의 문체를 만들어 라. 그는 각 소설마다 언어적 장단을 변주한다. 그게 텍스트와 문체의 궁합으로 나타난다. <난중일기>에서 힌트 얻은 <칼의 노래>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군인의 문장이다. 그래서 긴박감 넘치는 단문적 속도감이 물씬하다. 김훈은 말한다. “글을 쓸 때 문장 안에 음악이 있어야 합니다. 음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논리와 사변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음악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전에 에세이를 쓸 때는 진양조 문장을 썼어요. 한없이 뻗어가는 스물네 박자짜리 진양조 문장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문장 하나하나가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세계여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칼의 노래>를 쓸 때는 진양조를 버리고 휘모리로 갔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마구 휘몰고 나간 겁니다. <현의 노래>를 쓸 때는 중모리나 중중모리로 밀었습니다. 체력이 덜 들어가고 문장이 편안합니다. 그런 박자를 갖는 문장이 아름답고 단정할 수가 있죠.” (계간지 <문학동네>작가와의 대담 중에서)

셋째 현미경 같은 사실주의로 칼날 같이 취재하라. 그의 서사는 장황하지 않고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모든 묘사와 서술은 사실에 기반 한다. 그는 <칼의 노래>를 구상할 때 여러 날을 아산 현충사 사당 장군의 큰 칼 앞에서 종일 서성거렸다. <남한산성>을 쓰기 전 한 계절 동안 산성을 자전거로 오르내렸다. 글들은 경박하지 않고 진중하여 읽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은 애써 중얼거리지 않는다. 백일몽으로 들뜨고 신파로 찔끔거리지 않는다. “21세기적 상상력”이라며 찰랑대지도 않는다. 여기에 문장 리듬이 남성적 호흡을 타면서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한다. 파도처럼 다가왔다 노을처럼 퍼지고 철새 떼처럼 아스라해진다. 문장과 문장은 역설적 대구를 이루면서 의미를 증폭시킨다. 구체성과 묘사와 주관이 꼬리를 물면서 꿰어져 있다. 예민한 후각을 장착한 필력은 팽팽한 관능의 문장으로 날이 선다. 현란한 동사의 역동성 사이를 헤매다 보면 마치 몽상에 빠진 듯 얼얼하다. 작가가 집중한 문맥들은 웬만한 시인의 시적 긴장감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