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건축에서 파생하여 인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예술에까지 거의 모든분야에
의식의 전환을 가지고온 예술사조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다." 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 포스트 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 모더니즘을 알아야겠죠?^^
근데 이 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토플러이니 한마디로 정의해 봅시다.....
미술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관관계만 알아서 되는것이 아니고
사실주의 그리고 그에 기반한 모더니즘 더 나아가 반발적 포스트 모더니즘을 동시에 인지하여야 합니다.
즉 무슨말이냐면 .........
이전 사람들은 그림의 사실적 재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내 그림이 현실과 같아 보일수 있을까?
그 결과 1400년대 초에는 원근법이 등장했습니다.
(사진은 알베르티의 그리드를 이용한 원근법을 계산하는 그림입니다....)
암튼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림은 더욱 더 섬세한 재현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도 맹점은 있겠죠?
그것은 그림은 객관적인 사실적 재현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림은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매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그림의 사실주의적 보완점으로 파생된 매체가 사진입니다.
그래서인지 사진은 한동안 회화의 적자라는 오명을 쉽게 씻어내지 못합니다.
...(물론 다른이유도 있지만요...)
그러면 추론해 봅시다....
사실주의에서 사실적 재현의 확고한 자리를 사진에게 내준 그림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물론 반발해겠죠....
그게 모더니즘입니다.
즉 사진이 가지지 못하는 그림의 고유한 영역 색감이라든지,
외눈박이 사진렌즈(하나의 소실점)에 반대하여 다소실점을 통한 입체성의 강조라는지
작가의 추상적인 상상력이라든지........
이러한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이 모더니즘을 생성하게 만듭니다.
(야수파니 입체파니 순수추상이니 머 이딴 것들이 이래서 만들어 진겁니다....)
(야수주의)
(입체주의)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반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화된 무슨 무슨 주의 머 이런것들에 대한 타파, 고급스러운 것들에 대한 반발, 고유성에 대한 반발, 단일 오브제에 대한 반발등
다양한 개성과 자율성을 중시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더니즘에 반항하는 거친 미술이었습니다.
다음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품들......(ㅎㅎ다 아실테지만........그래도 아쉬우니....ㅋㅋ)
물론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사이에는 더 많은 역사적 수순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한마디로 얘기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실주의적 반발->모더니즘의 반발->포스트 모더니즘 생성)의 수순을 따르고 있습니다.
(야수파니 입체파니 순수추상이니 머 이딴 것들이 이래서 만들어 진겁니다....ㅋㅋ)
현대의서양문화
대상 학과 |
관광학과 |
교과목명 |
현대의서양문화 |
대상 학년 |
4학년 | ||
※ 학번과 관계없이 A형, B형 중 택1 | |||
A형 |
철학분야에서 포스트모던적 사유가 근대성에 대해 가하는 비판양상에 대해 서술하시오. (분량: A4용지 5장 내외, 점수: 30점) | ||
B형 |
현대서양의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비서구 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하나를 골라, 그 캐릭터가 서구중심주의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혹은 극복하고 있는지)를 서술하시오(보기:007제임스본드, 슈퍼맨, 뽀빠이 등). (분량: A4용지 5장 내외, 점수: 3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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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포스트 모던니즘>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 ·건축 ·무용 ·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 사회에 급속히 침투해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우선 모더니즘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 모더니즘이란 모던의 정신 내지는 철학을 가리킨다
그럼 모던은 무엇인가? 모던이란 서양의 근.현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크게 중세와 구분을 짓는 그 이후의 시대를 말하며 중세를 청산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종교개혁.산업혁명.프랑스혁명등을 들수있다
모더니즘은 이런 개혁이나 혁명을 가능하게 해준 서구 계몽주의 사상 내지는 철학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한계 내지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페러다임을 추구하는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말할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을 벗어나려 하는가?
그리고 이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과연 새롭게 생산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전개 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이 계속된다.
만약에 이런 물음에 대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도는 한낱 지적인 허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것이다
90년대 이후에 한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포스트 모더니즘과 맑시즘 등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말이 들어간 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고 책들도 많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있다
이런 책들의 부작용으로 입에 포스트 모더니즘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것이
매우 안타깝다
프랑스에서 출발 했다고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리고 진보적 학자들이 포스트 모더니즘 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할때 프랑스의 푸코.들뢰즈.데리다를 말하지만 정작 이들은 포스트나 포스트 모더니즘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말한다
또한 부르디외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창궐을 경계하면서 이를 식별할수 있는 방법에는 포스트 탈근대성등의 말이 제목으로 들어있는 책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 하고있다
그 이유는 데리다의 텍스트 이론을 이해 하려면 그가 텍스트를 직물짜기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잘 살펴야 하는데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데리다의 해체론을 단순한 파괴로 이해하고
자신 중심의 의미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주장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기때문이다.
데리다의 텍스트이론을 잘이해 하려면 종전의 피라미드적 구조나 자기애정을 갖고있는 각종의 중심주의(자아중심주의.논리중심주의)등을 해체하고 서로 이질적인 것이 서로 짜집기하여 하나의 열려진 의미를 갖고 있는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이해 해야한다.
직물짜기는 날실과 씨실이 서로 받아들이고 엮어짐으로 가능해지는것인데
즉 논증적인 것이 비 논증적 인것과 접목하여 언어적인(명시적 언어) 것이 비 언어적인(언어에 앞선 언어로서 잠재적 언어) 것과 이성적인 것이 감성적인 것과 서로 짜집기 하는 데에서 그의 텍스트 이론을 이해 한다면 그의 해체론은 탈구성으로서의 재구성으로 바야 할것이다
만약 이런 부분을 제대로 이해 하지 않으면 서울역 노숙자의 앵벌이를 노마드적 삶이라고 칭찬하고
정치적 영역은 텅텅 비워둔채 분과학문의 벽을 마구 넘나드는 소위 횡단의 글쓰기 속에서 혁명을 보고 주장을 할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을 아무리 지적해도 이해 하지 못할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적이네 텍스트가 어쩌네 말하기 전에우리 사회에 급속히 침투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양면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파악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패러다임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의 정확한 차이점을 파악하기도 모호한 점이 많으며 사회주의 몰락이후 미국에서 포스트 모던이란 새로운 페러다임을 재포장.재무장을 통하여 배급 배포함으로써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하게한 부분을 관과하며 그저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성에 맞는지. 과연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정체성을 갖고 비판적이고 발전적인 접근과 접목이 필요할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게 뭐예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20세기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탈근대주의" 혹은 "후기근대주의"라고 불리는 주요한 철학적 사조(思潮)중의 하나입니다. 말이 철학적 사조이지 사실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속속들이 스며들어서 우리의 사상과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사고체계입니다. 처음에는 서구에서 문학과 미술 등의 분야에서 나타났지만 지금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 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체계는 앞으로도 30-40년은 너끈히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복잡하게 보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여기서는 특히 십대들에게 적용하여 기성질서와 대립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들을 살펴 보면서 복음의 문화적 변혁에 접촉점을 찾아 볼까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특성 중 첫째로는 서로의 '관계성(relationship)' 보다는 '나 자신'에게 삶의 안정감을 두고 집중을 더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공동체 안에서의 "서로"의 관계성에 기초를 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것인가는 두 번째 문제이고 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들은 항상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거나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쉽게 나서지를 않습니다. 반면에 자기자신이 절대적 가치를 체험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고생을 하는 것일지라도, 어려움과 부담이 느껴지는 것일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거는 세대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복음적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서 볼 때 전 세대(世代)보다 훨씬 더 많은 헌신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 있는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그리스도적 삶에 대해서 물, 불을 가리지 않는 특질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앞뒤보고 잔머리 굴려가며 인생을 재어보는 것이 아니라 '좋으니까 그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도를 가지고 행하는 사역은 지금과 같이 주위환경으로 인해 믿음이 식어진 이 세대에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련회나 모임에서 레크레이션 좋아한다고 그런 위주의 프로그램 일색으로 짜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원복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을 갖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은 기존의 가족공동체에서 지켜져 내려왔던 믿음의 유형이나 교회전통의 신앙의 행태를 수용하고 따라가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집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릴 때 꼭 찬송 한 장하고 아빠가 성경읽고 말씀전하고 서로 통성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것이 정례화된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세대들은 이것을 금방 싫증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생각합니다. '왜 꼭 예배 때마다 저렇게 해야 하는가?' '주기도문을 안하고 다른 복음송을 부르고 마치면 안되나?' '말씀은 꼭 아빠가 읽고 설교(형식을 빌어서) 해야 하나?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본문을 읽고 만난 하나님을 나누면 안될까?' '가끔씩은 뮤지칼식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면 안되나?' 등등
지금의 십대가 전통적인 예배 방식이나 신앙의 스타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때 부모나 선생님들은 '이들이 아직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럴꺼야'라든지 '얘네들이 영성과 경건성이 왜 이렇게 떨어지지?'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들과의 만남의 다리는 영영 끊어져 버릴 것입니다. 왜냐면 이들의 영성이 밑바닥이든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던지 간에 상관없이 지금의 10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괴상한 철학이 전염시킨 사고방식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병을 앓고 있는 영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탓하기 이전에 가정예배의 분위기와 방법을 다채롭게 변화시켜 보십시오. 아이들은 우리시대에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그들의 시대에 그들의 방법으로 쉽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삶의 방법안에서 한 주(主)와 한 성령을 호흡할 수 있다는 특권을 날마다 맛볼 수 있다면 행복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이들의 세번째 특징은 자기의 개성을 극대화시키며 이것에 절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인정하기 힘든 좀 유달리 튀어 보이는 옷을 입고 오거나 행동을 하게되면 당장 구설수와 입방아질을 당하기 일쑤였고 본인도 이런 면을 매우 신경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들은 오히려 남들과 '다른 것', '특별해 보이는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는 자기만의 개성이 굉장히 어필하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입고 먹는 것도 비슷해야 친구야"라는 관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와 달라 보이는 또래를 더 인정하고 우상화하고 그도 또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반면에 한가지 좋은 점도 있습니다. 개성이 강조되면 창의성이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독창적인 능력들이 개발되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experts)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근대주의나 유교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이 저력을 나타낼 수 있는 일은 잘 할 수 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토양이 그만큼 않되기 때문에 바람만 잡고 분위기만 잡고 끝난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한국교회의 분위기와 성장위에 각 분야의 문화영역을 기독교적으로 힘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전문가적인 전문인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집단주의에 민감해져있는 세대들 보다도 지금의 세대들이 덜 부담을 느끼고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을 먹고 자라나는 10대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붙잡아야만 합니다. 이들이 성령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역들을 발견하기 시작 한다면 이들은 이 세대의 각 분야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변화시키는 무서운 세대로 자라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드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 The Language of Post-Modernism』(1975)와 유사한 여러 권의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는 “순수함보다 잡종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뚜렷한 단일체”보다 “복잡한 활력”을 선호한다고 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이는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 것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 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만큼 외고집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우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샐리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 홀저의 작품과 로버트 맹골드의 그림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벤투리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의는 현재의 미술 전체를 설명하는 데 문제가 있다.
7. 사전적 정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크리스 발딕은 『간추린 옥스퍼드 문학 용어 사전』(1990)에서 적절한 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적 상황을 가리키며, 특히 TV, 광고, 상업디자인, 팝비디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와 양식들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고 이런 의미에서 ... 포스트모더니티는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a(모조품),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전통적으로 가치를 지녔던 깊이, 일관성, 의미, 독창성, 진본성과 같은 특성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된다. ...
모더니스트 미술가와 작가가 신화, 상징, 혹은 복잡한 형식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얻고자 애썼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작업을 선호한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을 ‘고급’과 ‘저급’ 문화들 간의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기며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멸조로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들을 ‘포스티posties’라고 부르는 회의론자들은 이 용어를 상업 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도덕적 결핍에 대한 학문의 무책임한 도취증상으로 여긴다.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로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작품에서 전통적 가치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되고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경솔한 실험이 반복된다면 이런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의 문화 현상을 규정하는 용어라기보다는 부분적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의 미술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8. 예술의 종말 이후로서의 동시대
모던으로부터 동시대로의 전이를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는 미국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견해이다.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1995)는 유명하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 미술사가와 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필독해야 할 가치 있는 책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예술이 종말을 맞은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를 동시대Contemporary란 말로 지칭한다.
‘동시대’의 가장 명확한 뜻은 단순히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대 미술은 현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술이다.
1970년대는 돌이켜보면 미술사가 길을 잃은 시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추상표현주의가 1962년에 종말을 고했다면 그 후 몇몇 양식들이 선두를 다투었는데, 그것들은 컬러 필드, 하드 에지,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 팝 아트, 옵 아트, 미니멀리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였으며, 그 밖에도 리처드 세라, 린다 벵글리스, 리처드 터틀, 이바 헤세, 바리 르 바, 그리고 개념주의 미술을 포함하여 영국의 새로운 조각New Sculpture으로 불리운 것들이다.
[아르테 포베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동시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컬러 필드의 영향을 받아 추상 회화나 모노크롬 회화를 추구한 ‘상황 Situation’ 미술과 개념 미술 및 일부 미니멀 아트와 유사하다.
아르테 포베라는 전통적인 미술 형식이나 도상의 사용을 거부하였고 체계화되지 않은 해프닝을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미술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는 아르테 포베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주로 미술 매체의 물질적인 속성 및 미술 재료의 변하기 쉬운 성질과 관련이 있는 근본적으로 반상업적이고, 불안정하며, 평범하고 반형식적인 미술을 표방한다.
실재 재료와 현실에 대한 미술가의 참여를 중시하며 또 그러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민감하고 지적이며 교묘하고도 사적인 강렬한 방법으로 해석해내려는 미술가의 시도를 강조한다.” ]
[새로운 조각: 1980년대 초에 개최된 일련의 전시회, 특히 1981년 런던의 현대 예술 협회와 브리스톨에 있는 아르놀피니 화랑에서 열린 ‘오브제와 조각’전을 통해 등장한 영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들의 작품에 구체적인 공통점은 없었지만 대체로 추상 조각을 제작했으며 산업 재료와 폐품을 사용했다. 더러 인간을 암시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양식들이 우열을 다투었더라도 1970년대에는 새로운 것이 부재한 시기로 보였다.
그때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가 1980년대 초에 등장했다.
[신표현주의: 에너지즘, 네오-야수주의, 격렬하고 폭력적인 또는 거친 회화에 대한 명칭으로 프랑스에서는 자유 구상Figuration Libre,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등으로 알려졌다.
재료를 처리하는 거친 방식이나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이다.
슈나벨을 선두로 몇몇 신표현주의 미술가들은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관습적인 기법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러 형편없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드 페인팅 Bad Painting’이란 말이 신표현주의 작품 일부에 적용되었다.
독일의 신표현주의자들은 종종 ‘새롭고 거친 사람들 Neue Wilden’로 불리었다.
신표현주의의 대표적 독일 미술가들로는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 라이너 페팅Rainer Fetting(1949~), 외르크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1945~),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1945~), 베른트 코베를링Bernd Koberling(1938~),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upertz(1941~), 펭크(랄프 빙클러)A. R. Penck(Ralf Winkler(1939~)가 있고, 이탈리아 미술가들로는 산드로 키아Sandro Chia(1946~),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엔초 쿠치Enzo Cucci(1949~),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1948~)가 있으며, 미국 미술가들로는 로버트 쿠시너Robert Kushner(1949~), 데이비드 샐리David Salle(1952~), 줄리앙 슈나벨Julien Schnabel(1951~)이 있다.
신표현주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향이 발견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이내 퇴폐한 회화로 인식되고 말았다.
주지할 점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모던 아트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너무 힘 있는 말이며 동시대 미술의 어떤 부분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벤투리가 말한 것 같이 분명한 양식에 대한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배척하면서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면서 바사리에 의해 개념화된 미술이 종말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고 그 이후의 미술을 ‘역사 이후의 미술’로 보았다.
워홀의 작품이 소개된 그때만 해도 그의 작품이 그런 엄청난 의미를 지니며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4.19 혁명을 예로 들면 4월 19일 그날의 학생들의 정치적 반발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깊은지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날의 의거가 우리나라 민주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심어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들어서야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서양에서 600년 동안이나 인식되어 온 예술의 개념을 분쇄시키는 의미가 있는 작품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blic』과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대부분 특히 조각과 드라마가 모방적mimetic이었으므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본 것은 당연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 사고에도 침투되었으며 최초의 미술사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전기작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74)는 자기 시대의 대가들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미켈란젤로를 절정에 달한 모방적 기교의 진보적 완전함으로 보았다.
그리스인이 모방을 예술적 이상으로 본 이래 바사리를 통해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에까지 이같은 인식이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으로 전해졌다.
이는 서양인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예술의 울타리를 치고 비서양인의 예술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면 아시아, 아프리카, 오대양의 예술에서는 예술의 이상을 모방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고갱을 비롯하여 유럽의 미술가들이 유럽 외의 예술을 동경했던 것은 모방이 예술적 이상이 아니라는 데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시각 예술이 모방과 긴밀한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서양에 알려졌을 때 “시각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란 무엇인가?” 하는 집요한 의문이 생겼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정확한 모방이 아니더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 예술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속박받아야 할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미술이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사물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다시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없는 가운데 완전 추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술가들이 알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은 미술가가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속성이 없다는 것 달리 말하면 미술품이 반드시 보여지도록 혹은 되어지도록 하게 하는 특정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의 단순한 도구도 미술품이 될 수 있었으며, 상품을 담은 상자도 작품이 되었고, 길에 버려진 고무조각 짜투라기들도 리처드 세라에 의해 작품이 되었다.
이런 사고가 20세기 말 보편적으로 나타나자 단토는 이를 예술철학사가 종말에 이른 것으로 보았다.
서양인을 오래 지배한 예술은 모방이라는 즉, 모방의 특성을 지녀야만 예술이라는 개념이 붕괴된 것이다.
이는 또한 서양 미술사가 종말을 고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던 아트는 20세기에 가장 확실하게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 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없이 두드러진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일 것이다.
이는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과 같이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명령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 없었다.
모더니즘의 시기에는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에는 미술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농후했다.
예술의 종말 혹은 미술사의 종말은 미술 운동들의 종말 또는 선언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완전한 예술적 다원주의의 시기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서양 중심의 미술 울타리가 걷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지구상의 어느 지역의 미술도 편입된, 다시 말하면 미술의 울타리가 모두 걷혀진 상태의 미술이 용인되고 인정되는 시기에 진입되었음을 뜻한다.
동시대란 이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9. 그렇다면 미술은 정의되지 않는가?
현재 미술의 정의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그룹은 미술이 정의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의 대표적인 인물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다른 그룹은 정의된다는 주장이지만 이들의 정의는 분분하며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미술이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약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정의로 단토는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고 그 의미가 작품에서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오브제에 읽을거리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이는 미술비평의 소관으로 미술품으로 존재하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따라야 한다.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제 수십 점에 달하는 작품을 함께 감상할 터인데 설명 없이 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이 작품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시대 미술이 전문적이 되었고 자기 지시성selt-referentiality을 지니고 있어 비평가의 식견이 미술품을 규정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동시대의 비평은 작품에 대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작용한다.
과거에는 작품을 성립하는 판단 기준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미리 존재했지만 동시대에는 작품을 규정하는 기준을 미술가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단토가 동시대 미술이 철학의 문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미술이 전문적이고 자기 지시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눈으로 파악되지만 그 의미는 눈으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를 캐는 데 철학적 추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오늘날 미술가들이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이론 없이 눈으로만 파악되는 미적 풍성함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지만 작품들에서 창작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오브제들은 많이 보여주지만 정작 창작의 의미는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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