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쌍사자 석등이 몇 기 있는 데
그 중 가장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이다.
사실 가장 우수하다는 말을 쓰기가 우수운 것은
속리산 법주사 석등과 광주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과 영암사지 석등이 다 이고
사자가 받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추가하면 고달사지 석등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곳 황매산 영암사지였는데 오늘에서야 기어이 그 바램을 풀었다.
겨울해가 너무 짦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해거름 전 도착했다는 위안을 가지고 황량산 폐사지를 거닐었다.
남아있는 유구들을 보 면 이 절을 조성한 사람들의 공력과 염원을 느낄 수 있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를 받치고 있는 기단 석축에 보이는 배수구와 돌 못(치석)이
이곳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금당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무지개 다리는 이제 흔적만 남았지만 화려한 난간을 상상하게 하고
그 위에서 만나는 쌍사자 석등의 쌍사자의 엉덩이를 볼 때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삼층석탑의 단아함과 균제미는 당대 최고 장인이 부린 솜씨임에 틀림없다.
쌍사자 앞 금당 소맷돌에 새겨진 가릉빈가의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노랫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금당 기단 사면에 새겨진 돌 사자의 흔적은 닳아 없어지고 지금은 겨우 윤곽이라도 느낄 수 있는 작품 하나
그나마 양호한 사자 하나만이 부처님 말씀의 증인인듯 남아있다.
쌍사자 석등의 화사석 네 면에 새겨진 사천왕에 이어
금당 주춧돌을 있는 인방 돌면에는 8부신중이 새겨져 있는데 그 역시도 겨우 몇 분만이 모습을 남기고 있다.
신라말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사찰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지만
불국의 꿈과 삶을 그린 선조의 염원은 잔재만으로도 그대로 전해진다.
영암사란 이름조차 원래의 이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황매산의 또 다른 이름인 영암산 그 기운을 그대로 간직한 곳임은 틀림없다.
해남 달마산 영봉의 느낌과 미황사 산지가람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
영암사는 인근의 해인사와 경주 불국사의 축소판인듯한 느낌이지만
폐사지가 갖는 황량함과 허망함에
불교의 인연설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영암사지의 뒷산인 황매산을 올라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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