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아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영화가 아비정전 이다.
즉, <아비이야기>라는 뜻.
술집 마담의 아들인 아비. 그는 술집 마담이 양모라는 것을 알고 생모를 알려달라고
졸랐다. 양모는 처음에는 생모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인지 아비는 막 마구 살았다. 마치 생모를 모르는 그는 그 사실이 함부로 살아도 되는 면죄부라도 되는 듯이.
첫장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화장기 없어 보이는 수수한 분위기의 장만옥이 매점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걸어 들어와서 콜라를 한 병 사 마신다. 바로 그 장면이 다시 반복된다.
적어도 다음날은 되는 것인지..일상의 반복이라는 의미인지....영화가 어둡다.
이렇게 세 번 콜라를 사 마신 다음에 남자가 "부탁해"하면서 일분만 같이 있어 달라고 한다. 1960 년 4 월의 어느 날이었다. (영화에서는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게 나온다.) 그리고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 분이라는 시간을 같이 있었으니 마치 영원한 연인이라도 된 듯이 굴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안 넘어 갈 사람이 있겠는가....그가 장국영인데.
다음 장면은 침실인데 촌스런 장만옥은 사랑하니까 결혼했으면 하지만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장국영은 절교 선언이다. 그 다음에 장만옥은 장국영의 아파트 입구를 맴돈다. 장국영에게는 유가령이란 새 애인이 생겼고 그런데도 여전히 장만옥은 그를 단념할 수가 없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그 일대를 순찰하는 유덕화가 본다.
장만옥과 유덕화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중에 필리핀에서 장국영과 유덕화가 우연히 만나서 필리핀에서도 여전히 사고뭉치인 장국영 때문에 유덕화까지 사건에 엮이는데 그 때 그가 그 남자란 걸 기억해내고
장만옥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 때 장국영이 "그녀를 만났군. 나는 기억해야 할 건 잊지 않아." 줄거리를 소개할 마음은 별로 없지만, 장국영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홍콩의 젊은 세대를 상징하기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다.
지금의 또 다른 "나"인듯이 뭔가 실패하여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고...
그를 길러준 마담은 영국이란 의미이라면, 그를 만나주지 않는 생모는 중국인가?
<상하이 블르스>가 중국으로의 반환 후 홍콩의 미래를 묻는 영화라면 정체성 없이
방황하는 홍콩의 자화상이<아비정전>이 아닐까 싶다.
대사 몇 가지를 소개했지만 유명한 대사가 너무 많다.
<발 없는 새...> 이야기가 아마 가장 유명할 것이다.
"죽기직전에는 뭐가 보이는지 궁금했어. 난 눈 뜨고 죽을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발 없는 새가 태어날때부터 바람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어..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 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것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세상에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때지
유명한 장면도 많고... 장국영이 하얀 러닝 셔츠를 입고 맘보를 추는 장면은 우리나라 CF에서도 패러디 한 적이 있으니 말이지.... 나는 개인적으로 트위스트를 아주 좋아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기회가 있다면 맘보도...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보다 한참 얼리적 이야기이다.) 그러나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장국영의 집 앞을 맴도는 장만옥의 모습이다. 어색하게 담배를 피다가 유덕화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담뱃불을 끄는 모습, 기다리다 돌아갈 차비가 모자라 유덕화에게 차비를 빌려 달라던 모습. 실연을 분위기 있게 하고 싶겠지만 못 배우고 가난한 그녀에게는 그것마저 쉽지 않겠지만 일단 같은 여자로서 헤어지자는 남자한테 찾아다니는 것 소름 끼치고... 그런데 장만옥이 그러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사적으로 니스에서 너무나 이쁜 동양여자를 보았을때 그녀가 장만옥이었다는데...ㅎ..후광이 있을만큼 이뻤다.) 그녀가 장국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어떤 여자와 어떤 행동을 하건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장국영은 장만옥이 싫은 게 아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진지한 사랑을 하기가 싫은 거라고 한다.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랑을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잖아. 아니, 아니어야 한다고 세상사람들 지론으로 일방통행하는 거다. 다른 사랑도 있겠지만.... 그런데<아비정전>에서의 사랑은 예술한다고 하는 특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가장 많이 닮았을 것이다. 반바지 정복을 입은 바보 같은 유덕화의 모습과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모습하는 <아비정전>의 거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사랑한다.(당연히 비디오 테이프도 사서 보고 몇번을 돌려보고 중국에서 불법씨디로도 보고...미쳤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그가 탁월한 감독이라는 것을 나같은 사람도 안다. 그의 정서가 곧 나의 정서라는 것은 아니고 알고 싶지도 않고...다만, <아비정전>은... 나를 위해서 만든 영화 같은 애틋함이 있다. 장만옥이가 진정으로 내가 해야하는 일을 하는것처럼 보인다. 평론가들은 <아비정전>이 저주 받은 걸작이라고 한다. 그런 말의 성찬이나 과찬을 모른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왕가위 감독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의 영화를 즐겨 본다. 광팬이다. 이유가 있다면 그가 만든 영화라면 뭐든 다 극장 가서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이유가 꼭 있다면 그건 <아비정전> 장국영 때문이다. 최후도 가슴을 아삼삼하게 하기 때문이다.
**장국영** 11년 전 만우절에 자살한 홍콩 배우 장국영. 장국영은 2003년 4월1일 만우절에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한장의 메모를 남긴 채 뛰어내렸다. 그의 나이 46세이었다. 만우절에 그의 자살소식을 접한 전세계 팬들은 당시 큰 충격에 휩싸였으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언론사가 만우절을 맞이해 이벤트를 벌인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장국영이 죽기 직전 남긴 메모에는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았다. 그와 탕탕(唐唐)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아주 괴롭다. 그래서 자살하려 한다(認識一位二十歲靑年, 在他與 ‘唐唐’ 間不知道如何選擇才好, 十分困難, 所以要自殺)"라고 쓰여 있었다. 2000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힌 장국영이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근거다. 그는 '홍루춘상춘'(紅樓春上春)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뒤 배우와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5년 우이썬(吳宇森)감독의 '영웅본색'에 출연하며 아시아 뿐 아니라 미국에도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장국영은 왕자웨이(王家衛) 감독과 작업한 ‘아비정전’에서 친어머니를 찾는 냉소적인 젊은이로 나와 음울함의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장국영은 '패왕별희'에서 여장 경극배우로 출연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해피투게더'에서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로 감정연기를 펼쳐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에 누리꾼들은 "장국영이'패왕별희'에 나온 배우였구나", "장국영, 지금 봐도 멋있다", "그 때 정말 장국영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인간 내면의 문제와 소통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탁월한 영상미로 풀어내어 표현한 감독. 러시아 사람. 희생...거울....노스탤지어.. 출생 : 1932년 04월 04일
사망 : 1986년 12월 28일
성별 : 남
출생지 : 러시아
1 희생(Offret / The Sacrifice) 1986년 스웨덴,영국,프랑스
별칭 : <The Witch>(스웨덴 제목), <Le Sacrifice>
2 노스탤지아(Nostalghia / Nostalgia) 1983년 이탈리아,소련(구)
별칭 : <노스탈지아>
극장개봉명 : <노스탤지어>
비디오 출시명 : <노스텔지아>
TV방영명 : <노스탤리저> EBS 세계의명화
3 잠입자(Stalker) 1979년 소련(구)
4 거울(Zerkalo / The Mirror) 1975년 소련(구)
별칭 : <White, White Day>
5 솔라리스(Solyaris / Solaris) 1972년 소련(구)
별칭 : <혹성 솔라리스>
6 안드레이 루블레프(Andrei Rublev) 1969년 소련(구)
별칭 : <The Passion According To Saint Andrew>, <Strasti Po Andreiu>
7 이반의 어린 시절(Ivanovo detstvo / My Name Is Ivan) 1963년 소련(구)
별칭 : <The Youngest Spy>, <Childhood Of Ivan>
1932년 4월 4일 출생. 반 공산주의적인 성향을 띄나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지향하지도 않는, 이데올로기에대한 혐오감마저 가진 감독. 62년 데뷔작인 <이반의 소년시절>로 베네치아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 <안드레이블레브>, <솔라리스>는 깐느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거울>은 영화의 기적이라고도 평가될 정도로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표현해 냈다. 81년 망명이후 <노스탈지아>, <희생>이 있으며 1986년 12월 29일 사망했다.
그는 폐허화된 정경의 물과 바람, 향수와 희생, 제3차세계대전의 악몽과 캐톨릭적인 주제 사이에서 역사와 이미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고향, 어머니, 아버지, 희망, 절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결국은 카톨릭으로 귀의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의 롱 테이크 기법과 원근법은 신의 경지이며 <희생>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어린아이의 이미지는 혁명적 낙관주의의 표현이다. 소련 영화 예술인 중 러시아 혁명과 레닌이 에이젠슈타인을 낳았다면, 거듭되는 공산주의의 실패와 부패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태어났다. 그는 에이젠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단언하며, 예술이란 그 자신의 창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