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장국영이 투신자살했다는 특보가 나오는 라디오.
무려 20년전이다. 그 보다 더 옛날인 그때는 홍콩영화 본다고 하면 무슨 문화적으로 미개인 취급 아니면 취향도 저급하네 하는 눈흘김을 받는다. 그 보다 훨씬 전에는 그야말로 황당 무계한 무협영화나 범죄와깡패가 난무한 홍콩영화였다. 어느 순간 감독이나 배우들 그들이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래서 사랑의 스잔나...노래만큼은 유명했던 영화는 추억이다.
그런 때에 중국말 익힌다고 비디오를 밤새 돌려보고 했던 그런 시간도 있었다.
영화 'Happy together'는 春光乍洩(춘광사설)이란 원제목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어쓰면 '봄 햇볕은 순식간에 사라진다'인지, 좀 더 풀어서 표현하면 "짙은 구름사이에서 비추이는 짧은 봄 햇살" 인지 모르겠다.
결국 사전을 찾아보니 '은밀한 부위가 슬쩍 드러나다'라는 숙어처럼 쓰이는 의미란다. 사랑은 서로의 감추고싶은곳은 감추고 사막의 신기루쫓듯이 타는 목마름으로 욕망하는거다. 봄(청춘)은 짧다가 아니였다.
부제목과 영화 내용으로 보면 같이 무엇을 한다는것은 - 사랑이든 여행이든 - 희망 소망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몸부림같다.
관계는 사랑은 늦겨울 여전히 차가운 공기를 제치고 나온 봄볕만큼 따뜻하고 편안한것이 아니다. 겨울만큼이나 유난히 혹독한 삶속에서 잠시 함께 푸근함을 햇빛처럼 나누고 시간속으로 덧없이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페친하고 전화하다가 사레 걸릴듯 크게 웃었다. 그녀는 동네 아줌마 모임에서 마악 흥이 돋아서 놀만 하면 꼭 중간에 얘들 밥 차려준다고 슬쩍 빠지는 사람이 있다는거다. 그 부인에게 - 우리 그만 헤어져! 이러면 순간 벙졌다가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 하면서 한 번 더 들려 달라고 한다. 왜? 좋아? 우리 그만 헤어져. 헤어져. 헤어져 이 말에 묘한 카타르시스와 후려함이 몽글몽글 맺힌다나...그 아줌마들 남편에게 하지 못하는 금기어를 그 중 나름 잘 사고 자유로운 듯한 녀자 입에서 술술 나오니깐 대리만족을 느끼는거다.
사랑이 속박이나 구속이 되거나 제도화되면 입은 말 못하고 마음으로 '우리 이젠 헤어져' 분리의 방이 생긴다. 사랑이든,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의 치부나 고통을 느끼는 그 순간 그 찰라를 덮어주고 보듬고 지나가야 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리저리 맞추어 봐도 내 생각은 부제목처럼 낭만이나 긍정적인 느낌이 안든다.
해피투개더는 없다.
사실 이 영화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이런 느낌을 확실하게 한것도 터어키 여행가서 밤에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나서 밤새도록 핸폰 유튜브를 뒤적거렸다. 게다가 영화 후기도 적어놓았는데 깨끗이 없어졌다.
아휘와 보영은 야반도주하듯이 도피처를 찾듯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르헨티나에 있는 이과수폭포를 가는것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필 왜 그곳이지? 지금도 가끔 아르헨티나 하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미국 갱스터 영화나 미드를 봐도 멕시코 경유로 남미 도피를 꾀하면 아르헨티나이다. 그곳은 다시 시작하는곳인가.
세상의 끝을 가듯 둘이는 개고생으로 보였지만 첫 장면은 둘이 춤추고 즐거워했다. 그곳으로 가는 끝없는 길 한복판에서 가이드같은 지도를 잃어버리고 기분 내키는대로 제멋대로 하는 보영(장국영)과 기집애처럼 소심한 아휘(양가휘).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시작을 반복하고 그 때마다 서로의 아쉼에 다시 받아들이고..어느날 보영은 몹시 얻어터진 상태로 아휘를 찾는다. 성심으로 치료하며 돌보는 아휘. 그러면서 보영은 당연한게 그 대접을 받으며 몸이 괜찮아지니 숨겨논 여권을 달라고 한다. 또 제 갈길 가겠다는거다.
돈도 없어 중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힘들어하는 아휘에게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창이 위로를 건넨다. 둘이 싸우는 소리를 창은 듣는다. 귀가 예민하다던 창은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는 여행을 떠나서 모든 슬픔을 세상의 끝에 버리고 올 거라며, 아휘의 슬픔도 버려줄 테니 슬픔을 담으라고 녹음기를 준다. 창(젊은 날의 장첸)하고 약간 삼각관계같은 분위기이다. 창이 자리를 비운 사이, 더러운 싱크대 뒤에서 아휘는 녹음기에 대고 숨죽여 흐느낀다. 그 흐느낌을 창은 창대로 거친파도가 있는 곳에서 듣는다.
홍콩으로 떠나기 전 보영과 함께 가려 했던 이과수폭포를 찾아가 아휘는 눈물을 흘린다. 마치 세례받는듯 물속에서 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싶었다. 보영은 아휘에게 늘 입버릇로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아휘는 결국 아버지에게 전화하면서 다시 시작할께요 한다. 마치 보영이 싫증나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다시 시작하는거야.
처음처럼 하는거야. 귓속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주면서 속삭이듯.
그 후 그는 대만의 야시장에 돌아다니다 창의 사진을 얻어 갖고 열차타고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시작하는건가. 사랑은 움직이는건가. 상황이 변했을 뿐이다. 공간이동만 가능하다.
작년 여름에 두텁바우동네..후암동을 가다가 이 영화제목을 한 작은 펍을 보았다. 그 앞을 지나는 중년의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가는 모습에서는 영화 데미지의 제레미 아이언스 가 겹쳐서 연상된다.
모든 욕망은 두려운 일이다. 그 중 제일 더러븐것은 어긋난 사랑을 하는 거다. 다시 시작하면 감정이 새롭게 흥이 날런지
"사랑은 어리석은 자들이 존재하기 위해 하는 신성한 일이다."
_ '그 땅에는 신이 없다'에서 악당 프랭크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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